과거 ‘음식의 불모지’라 불리던 영국은 이제 세계 미식의 중심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런던이 있다. 런던은 전통적인 영국 요리와 다양한 이민 문화가 융합된 도시로, 유럽에서도 가장 다채로운 음식 지형을 자랑한다. 이번 글에서는 런던을 대표하는 세 곳의 맛집, 디시움(Dishoom), 세인트 존(St. John), 스케치(Sketch)를 소개하며, 런던이 어떻게 미식의 도시로 거듭났는지 살펴본다.
디시움 – 런던 속 인도, 향신료의 낭만
디시움(Dishoom)은 런던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도 레스토랑 중 하나로, 20세기 초 뭄바이의 고풍스러운 카페를 재현한 공간이다. ‘현대적 향신료의 극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곳은, 향신료와 문화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미식의 명소다. 대표 메뉴는 ‘블랙 달(Black Daal)’과 ‘버터 치킨(Butter Chicken)’이다. 블랙 달은 렌틸콩을 하루 이상 천천히 끓여 만든 진한 커리로, 부드럽고 크리미하면서도 깊은 향을 낸다. 버터 치킨은 인도 요리의 정석이지만, 디시움의 버전은 한층 섬세하다. 매콤함과 고소함의 균형이 완벽하며, 따뜻한 난과 함께 먹으면 최고의 조화를 이룬다. 이곳의 인테리어는 고전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낡은 목재 테이블, 세피아 톤 조명, 오래된 신문 포스터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인도 재즈 음악은 마치 1940년대 뭄바이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디시움은 런던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영국이 제국 시절부터 이어온 인도와의 관계, 그리고 오늘날의 글로벌 감각이 한 그릇의 커리 안에서 완벽히 녹아 있다. 런던 여행 중 진심으로 따뜻한 식사를 원한다면, 디시움은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세인트 존 – 영국 전통의 부활
세인트 존(St. John)은 런던 미식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다. 1994년, 셰프 퍼거스 헨더슨(Fergus Henderson)이 이곳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영국 음식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세인트 존은 “낭비 없는 요리(Nose-to-tail eating)” 철학으로 유명하며, 영국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선구자다. 대표 메뉴는 ‘로스트 본마로우(Roast Bone Marrow)’와 ‘웰시 래빗(Welsh Rarebit)’이다. 로스트 본마로우는 소뼈를 오븐에 구워 골수를 퍼먹는 요리로, 버터처럼 부드럽고 진한 풍미가 특징이다. 토스트에 골수와 파슬리 샐러드를 얹어 먹으면 고소하면서도 깔끔하다. 웰시 래빗은 치즈 소스를 바른 토스트로, 영국식 브런치의 상징이다. 이곳의 매력은 음식뿐 아니라 분위기에도 있다. 흰 벽돌 건물 안의 심플한 인테리어는 마치 수도원을 연상시킨다. 셰프들은 불필요한 장식을 최소화하고, 오직 재료의 본질에 집중한다. 이런 철학 덕분에 세인트 존은 미쉐린 스타를 받았고, 전 세계 셰프들이 ‘순수한 미식의 교과서’로 평가한다. 세인트 존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국이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다. 전통적으로 평가절하되었던 영국 요리를 진정성 있게 복원하고, 그것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상징적인 공간이 바로 세인트 존이다.
스케치 – 예술과 음식이 만나는 공간
스케치(Sketch)는 런던에서도 가장 독창적이고 화려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이곳은 ‘예술로서의 요리’를 주제로, 프랑스식 파인다이닝과 예술 전시가 결합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스케치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분홍색의 웅장한 ‘더 갤러리(The Gallery)’ 홀에는 수백 점의 현대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모든 식기는 주문 제작된 예술품이다. 테이블마다 디자인이 다르고,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미래적인 캡슐 형태로 꾸며져 있다.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가 이끄는 메뉴는 계절마다 바뀐다. 대표 메뉴는 ‘랍스터 라비올리(Lobster Ravioli)’와 ‘트러플 퓌레(Truffle Purée)’다. 각 요리는 예술 작품처럼 플레이팅 되어 시각적 즐거움을 주며, 맛은 프랑스 요리의 섬세함과 런던식 대담함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스케치의 매력은 그 화려함에만 있지 않다. 이곳은 런던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감수성을 압축해 보여준다. 전통과 혁신, 보수와 실험이 공존하는 공간. 런던이 단순히 과거의 제국이 아니라 현대 예술과 미식의 교차점임을 증명하는 상징이다.
런던 맛집 여행의 의미
디시움, 세인트 존, 스케치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런던의 미식 문화를 이끌고 있다. 디시움은 제국의 유산과 다문화 감각을, 세인트 존은 전통과 근원의 복원을, 스케치는 미래적 창조와 예술적 실험을 상징한다. 세 식당을 통해 우리는 런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오늘날 런던은 단순히 ‘영국의 수도’가 아니라, 세계 미식의 수도다. 이 도시는 인도, 프랑스, 이탈리아, 중동, 아시아 등 수많은 문화가 교차하며 만들어낸 거대한 식탁이다. 거리의 간단한 샌드위치부터 예술적인 요리까지, 모든 것이 공존한다. 결론적으로 런던 맛집 여행은 ‘다양성 속의 조화’를 경험하는 여정이다. 향신료 냄새가 풍기는 디시움의 한 모금, 진한 본마로우의 맛, 스케치의 화려한 플레이팅 — 그 어느 것도 겉돌지 않는다. 런던은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가 한 접시 위에서 어우러지는 도시다. 그리고 그 한 끼는, 이 도시의 역사와 예술,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이야기다.